[뉴있저] '왜곡과 망언' 여전한데...맞서던 할머니는 눈을 감다 / YTN

2021-12-13 1

한일 외교장관 만남 소식이 이렇게 전해지던 어젯밤에 할머니 한 분의 부고도 전해졌습니다.

보십시오.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 유족회장을 지낸 이금주 할머니입니다.

고 이금주 회장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남편하고 결혼을 해서 이제 아이가 태어난 지 몇 달 됐는데 남편이 징병으로 끌려가버렸습니다.

그리고 해방되기 직전에 남편의 전사 통지서가 집으로 배달돼 옵니다.

1987년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전쟁범죄 피해배상 소송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민주화 이후에나 가능했죠.

보십시오.

1988년에 가서야 광주유족회를 결성해서 할머니가 나섭니다.

우선 전남 광주지역을 발로 뛰어다니면서 47개 지부를 만들고 회원을 1000명 이상 찾아내서 강제징용 피해자 1273명의 원고로 이른바 천인소송이라는 걸 시작하게 됩니다.

그게 1988년 할머니 나이 거의 70살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 방을 사무실로 삼고 볼펜 쥐기도 쉽지 않은 나이든 손을 주물러가면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다 할머니가 손수 정리한 자료가 소송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볼까요.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한국인 피징용자들이 한국으로 돌려보내준다고 하더니 의외의 뜻밖의 행로로 가다가 폭발해서 침몰하고 피해자는 몇천 명인지 사실 아직도 모릅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할머니의 싸움은 계속됐습니다.

관부재판.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잇는 재판이라는 뜻이죠.

그다음에 1995년에는 B, C급 포로감시원 소송.

이거는 일본군에게 조선인들이 끌려갔는데 학대를 당하면서 포로감시원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전쟁에서 진 다음에 영국이나 미국이나 네덜란드는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에 있던 우리 동포들을 일본군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해서 사형 또는 무기징역, 20년 징역형을 때립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들은 국내에서는 가족들이 자살하기도 합니다, 절망에 빠져서.

그런 일도 있었고.

그다음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미쓰비시 문서 공개 소송 등입니다.

일본을 오고간 것만 할머니가 80여 차례가 넘고 일본 법정에서 기각당한 것만 17번입니다.

아들과 며느리도 할머니와 함께 싸우다가 할머니를 남겨둔 채 10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손녀가 직장을 그만두고 할머니를 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현... (중략)

YTN 변상욱 (byunsw@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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